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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리를 쉽사리 뜨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사건의 흑백을

가려서 따져 보고 싶었다.그러나 강주 아가씨가 또 발칵 소리를 질렀다.”얘! 바보 같은

년아! 도련님이 자꾸 돌아가라고 하시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단 말이냐?”비운은

이 순간에 얼마 전 동굴 속에서 목격했던 벌거숭이 아가씨에 관한 일을 물어 볼 생각

을 했다. 그러다가 강주 아가씨가 발칵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

눈을 딱 부릅떠서 소세옥의 얼굴을 노려봤을 뿐이었다.결국 강주 아가씨와 비운은 돌

아서서 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소세옥은 자기 시야 앞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두

여자들의 그림자를 응시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긴 한숨이 터져 나올 뿐이었다

. 극도로 괴로운 심정에 대장부 소세옥의 두 눈에도 눈물을 글썽글썽했다.두 여자들의

그림자가 멀리멀리 사라져 버린 뒤에 소세옥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숲에서 밖으로

나왔다. 희미한 마지막 달이 하늘 가에 싸늘하게 걸려 있었다. 별안간 일종의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이 왈칵 가슴을 후려갈기는 것 같았다.이제, 그가 해야 할 오직 한 가지 일

은, 한시 바삐 매약화 아가씨를 찾는 일이다. 매약화 아가씨 역시 자기와 꼭같이 기진

맥진해서 멀리 걸어가지도 못하고 어떤 숲속이나 잡초 우거진 바윗돌 틈바구니에 몸

을 감추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을 때, 소세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가씨를 찾아야

만 하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매약화 아가씨를 찾아야만, 그 다음에 이 계곡에서 빠져

나갈 방법이 생각날 것만 같았다.자기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냐 하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무영객의 소위 화합신향(和

合神香)이란 것이 도대체 어떠한 독성(毒性)을 지닌 극약인지? 아직까지도 그 점을 똑

똑히 모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어떤 사람의 어떠한 해독제를 가지면 자기 목숨을

건져 낼 수 있는지, 그런 점도 알 수 없었다.체념할 수밖에 없는 이 짧은 인생의 시간 속

에서, 소세옥이 어찌 그런 사치스런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랴!어쨌든 매약화 아가

씨를 찾아낸 다음에 그밖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우리 두 사람은

어차피 죽고야 말 몸이다!”응당 한 때, 한 자리에서 같이 죽어야만 될 몸이다!’이렇게

생각했을 때, 소세옥은 촌보를 떼어 놓기 힘든 몸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가시 덤불을 이

리저리 헤쳐도 보고, 잡초가 무성한 바윗돌 틈바구니를 닥치는 대로 더듬어 봤다. 그러

나 소리를 질러 불러 볼 수는 없었다.첫째로, 그는 만빙여 아가씨가 자기의 음성을 알아

차릴까 그것이 겁났다.둘째로, 천하제일방의 방주 무영객이 아직도 이 계곡 어딘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겁냈기 때문이다.